2018년에 그린 그림들, 그리고 드는 복잡한 생각들

2018/12/26 00:37 / Creative/Artworks

올해는, 내가 취미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이래 어느 해보다도 많은 그림을 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가 모티베이션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올해도 연례행사로 최애캐 샤로의 생일인 7월 15일에 맞춰 일러스트를 그린 것이 올해 처음 그린 그림이었는데... 그 이후부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림 그리는게 재밌어져서 꽤 많은 짜투리 시간을 그림그리는데 할애했다.

예전같았으면 그림 그릴려고 하면 그림 그리려는 '작정을 하고' 태블릿을 꺼내 책상 위에 두고 했어야했는데, 아이패드가 생긴 이후로 스케치를 하는데까지 걸리는 노력의 문턱이 굉장히 낮아졌다보니 뭔가 그리고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때 금세 쓱싹 하기 편해져서 더 많이 그리게된건지 모르겠다.

아이패드용 드로잉 앱인 Procreate는 원래도 아이패드에서 그림그리기에는 깔끔한 UI와 대부분 원하는 기능은 다 되는 안성맞춤 앱이었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특히나 몇몇 기능의 추가로 더욱 아쉬울 것이 없는 앱이 됐다. (드디어 '클리핑 마스크' 기능이 추가됐다) 다만 여전히 캔버스 크기에 따라 레이어 갯수가 제한이 되기 때문에 많은 레이어를 겹쳐서 수정하기 용이하게 작업하는 내 스타일 상 캐릭터가 많아지거나 그림에 뭔가 많으면 금세 레이어 제한에 걸려버리는 상황이 많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그림같은 경우는 스케치는 Procreate에서 시작해서 채색까지 갔다가 결국 레이어 제한에 걸려서, PSD로 출력한걸 클립 스튜디오에서 불러들여서 작업을 계속했다. 아이패드용 클립스튜디오도 일단 사놓은 상태이긴 한데 아무래도 아이패드에서 컴퓨터용 UI를 그대로 가져왔다보니 편의성 면에서는 오히려 Procreate가 더 좋아보이는 면도 있어서 잘 안 쓰고 있었다. 이 기회에 처음으로 쓰게 되었는데 그냥 컴퓨터용 앱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 역시 최대 장점인듯 하다. 자체 클라우드 싱크 시스템을 써서 컴퓨터로 변경사항을 동기화할수도 있고 (엄청 스무스하진 않지만)

9명 캐릭터 전신이 들어간 그림을 그려본건 처음이었는데, 그만큼 긴 시간이 걸려 완성한 그림이지만 역시 이번에도 그림 그리는데 들인 공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 (=조회수)으로 돌아오는건 아니라는걸 다시한번 깨닫게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주 옛날에, 처음 pixiv라는 커뮤니티를 접했을때도 비슷한 불평을 늘어놨던 기억이 난다. 그림 올린 아티스트의 인지도에 따라 너무나도 파급력이나 반응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랭킹이 있어도 맨날 오르는 사람만 오르고, 실력이 있지만 인지도는 없는 신인 아티스트가 알려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진짜 실력이 있고서 그림 잘그리고서야 그런 불평을 했다면 사람들이 봐줬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때는 실력도 없었고 (지금도 있다고 하기엔 뭐하다) 불평할 자격도 없었지만.

결국 그림 실력은 실력대로 연마를 하되, 진짜 내 그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기 원하면 당연히 자기 인지도를 올리는 자기PR도 필요하다는 말인데 그걸 나는 하기 싫었던거같다. 어차피 이거 안돼서 내가 돈 못벌어먹는것도 아니고 직업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논리였고... 숫자같은거 신경 안 쓰고 그냥 내 눈 보기에 좋고 내가 보고싶은 걸 내 만족 위해 그리면 그걸로 된거다-라는 식의 자기세뇌를 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거같다. 역시 뭔가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했다. 자꾸 숫자에 집착하게 됐다. 그래서 사상 처음으로 진짜 유행에 편승한 캐릭터의 일러스트를 낙서 퀄리티로 (평소에 진심을 담아 시간을 충분히 들여 완성하는 그림에 훨씬 못 미치는 정성과 적은 시간으로) 그려 올린것이 단숨에 북마크 100개라는 수치까지 올라가는걸 보고...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동시에 이런거로 기뻐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역시 사람들의 반응을 얻으려면 사람들이 원하는걸,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서 그려야한다는 걸—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증명해버린 셈이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좋아하는걸 그리고, 많은 노력과 정성과 시간을 들인 만큼 사람들이 그 열정을 알아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항상 그게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사람의 관심을 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다. 그게 목적이었으면 그냥 당장 커미션 받아서 돈받고 그림 그려주는게 더 잘 먹혔겠지. 물론 나같은 사람에게 커미션 부탁할 사람이 있을까부터가 이미 근거 없는 전제지만...

아무것도 할 일 없이 시간이 남아도는 백수라면 이런 걱정을 안 했어도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직장을 다니고 있고 내가 내가 하고싶은 것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있다. 그림 그리기는 어디까지나 내게는 취미이자 여가의 영역이고, 많은 취미들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데 드는 시간이 보통 긴 시간이 아니다보니, 다른 취미들과 비교했을때 이만큼 시간을 투자해 과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돈때문에 하는게 아니라면 단순히 '만족감'으로 잴 수 있겠지만... 그림 자체는 내가 만족할때까지 그리는 주의라 수정하고 수정을 거듭해 나름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까지 다듬지만 그 '만족감'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이 봐주고 반응해주는 것에서 오는거라면 나는 전혀 수지타산이 안 맞는 장사를 하는 것 같다.

코미케같은 즉매회에서 내 그림을 내보고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어디까지나 나는 아마추어고, 그런 회장에서는 아마추어들끼리 각자 열정을 가지고 만든 것들을 서로 appreciate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실력의 차와 인지도의 차는 분명히 존재하고, 온라인 상에서 단순히 숫자로 나타나는 수치가 아닌 실제로 보이는 '사람의 반응'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라 이쪽 바닥에 인맥도 없고 인지도도 0인 내가 그런데 무턱대고 나간다고 뭐가 될까? 비참해보일 자신을 상상해보면 한없이 두려워진다. 당연히 처음 데뷔한 사람이 뭐가 되겠어, 처음에 뭔가 대단한걸 기대하는게 어리석은거고 지금 유명해진 사람들도 다 시간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겠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요구하는거라면 그런 진지함으로 이 바닥에 임할 각오가 되어있는가? 생각하면 거기까진 아닌거같고.

내 그림 실력이 엄청 뛰어났다면 뭐가 됐을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한것같고. 어느정도 정점에 올라가고는 싶은데 그에 요구되는 노력은 안 하고 싶은 모순된 욕심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난 뭘 하고 싶은걸까? 왜 그림을 그리고 싶은건가?

내년에도 올해만큼 그림을 그리게 될까? 잘 모르겠다.

responses

2 comments

  • 로리! 2018/12/26 16:49

    Edit Reply

    그래도 그림 이쁘네요 잘 그리셔서 부럽습니다.
  • 모리야 2018/12/30 12:03

    Edit Reply

    꾸준히 성장하시는 것 같아 대단합니다. 저도 그림을 욕심낸 적이 많았는데, 결국은 놔버렸어요.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