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만에 다시 해본 포켓몬의 추억, Pokemon Y + Nintendo 3DS XL 구입 및 감상

2014/03/11 13:29
* * *

발단

지난 2월 13일에 그 유명한 ‘트위치 포켓몬’ (Twitch Plays Pokemon)이라는 신개념 게임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링크한 엔하위키 해당 페이지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포켓몬 1세대 게임인 레드 버전을 에뮬레이터로 돌리는걸 방송하는건데, 한 사람이 플레이하는게 아니라 해당 채널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채팅창에 left, right, up, a, b 이런식으로 입력하면 그걸 가져다가 실제 게임 커맨드로 전달하는 방식.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인터넷상에서 나름 굉장한 화제가 되어서 트위터를 통해 저에게도 소식이 전달이 되었습니다.

회상

제가 포켓몬을 처음 플레이해본 건 2000년도에 미국에 갔을 당시 며칠 밤 묵었던 집의 어떤 형이 자신이 갖고놀던 구형 흑백 게임보이와 포켓몬 레드 팩을 선물로 주었을 때였습니다. 당연히 북미판이었고, 그 당시 기억으로 따지면 아마 세이브파일도 그대로 남겨진채로 주어서 뭣 모르고 그냥 저는 생애 첫 휴대용 게임기가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좋아하기만 했던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링크]

하지만 이건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2000년도 3월에 짧은 미국여행을 거쳐 카자흐스탄에 도착해서 9월에 현지 학교를 들어갔는데 (당시 초3) 어느날 자랑스럽게 게임보이를 학교에 들고가서 아이들 사이에서 뽐을 실컷 낸 뒤 쉬는 시간에 잠시 교실을 나갔다 온 사이에 가방에 넣어두었던 게임보이가 사라졌던 것. 러시아어도 막 배우던 참이라 말도 안 통하고 온통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인은 저 혼자였던 상황에서 그 게임보이를 다시 보게 될 일은 안타깝게도 없었습니다.

포켓몬하고는 좀 무관한 이야기이긴 한데, 전 이래저래 휴대용 게임기와 좀 연이 없었던것 같기도 합니다. 생애 두번째로, 그리고 나름 정식으로 얻게된 게임기는 ‘원더스완 칼라’였는데 (이때는 디지몬에 한창 심취해있었습니다) 이것도 별로 오래 가지는 못한게 한 2005년인가 한국에 왔을때 온갖 디지몬 완구/카드 등 상품이 들어있던 제 나름의 ‘보물가방’을 공항에서 통째로 잃어버린 것.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타고 나서야 제 어깨에 가방이 걸려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뭐.. 그건 그렇고, 포켓몬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렇게 처음으로 게임기를 얻었다가 잃어버리고 난 후 좀 시간이 지나서 ‘에뮬레이터’의 형태로 포켓몬을 다시 접하게 됩니다. 계기가 뭐였는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해외에 있을때 GB 에뮬레이터와 포켓몬 2세대 ‘골드&실버’롬파일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열심 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나서는 어떠한 이유로 오랜 기간동안 포켓몬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는데, 아마도 카자흐스탄이 후진국이었던 만큼 게임들이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아 게임을 구할 방법도 없고 설마 있다 하더라도 부모님이 허락해주실 리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사그라들었던것으로 생각됩니다.

and 10 years later,

앞서 말했던 트위치 포켓몬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포켓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되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2007년에 귀국한 후 인터넷상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포켓몬을 매니악하게 파고드는 ‘포덕’들을 종종 보았는데, 궁금해서 검색을 해본다거나 하면 그새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고 포켓몬 게임도 세대를 거듭하여 많은 변화를 해왔기에 그저 너무 낯설어 보였습니다. 옛 추억을 생각해서 다시 해보고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접근하기 어려웠다고 할까요. 이 부분은 실제로 저처럼 어릴적에 플레이해봤다가 그만두고 최근 되어서 최신 세대 포켓몬 게임을 다시 잡은 대다수 올드 유저들이 많이 공감한다는 사항이라던데, 고작 150마리, 2세대까지 포함해서 250마리 정도였던 포켓몬의 수가 700마리로 불어났다는것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기도 했구요. 2003년경에 미국에 두번째로 방문했을때만 해도 애들이 GBA에 3세대 게임 (루비, 사파이어)를 끼고 노는것을 구경하면서도 ‘와 포켓몬이 그사이에 이렇게 변했구나, 전부 처음 보는 모르는 포켓몬 투성이네’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은 뭐.. 말 다했죠.

우선은 천천히

그렇게 망설여져서 피해왔던(?) 포켓몬이었습니다만 여느때보다도 다시 하고픈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여러가지 정보를 찾아보던 중 때마침 탈옥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아이폰용 GBA 에뮬레이터 GBA4iOS를 발견하여서 설치해보고, 얼떨결에 1세대 Red버전의 3세대 리메이크인 FireRed 버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의 공백기를 때우는 트랜지션? 같은 느낌으로 파이어레드 선택은 매우 적절했던것 같습니다. 1세대와 등장하는 포켓몬도 완전히 동일하고 스토리도 동일해서 친숙하지만 그래픽과 시스템만 3세대로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었던지라, 옛 추억에 흠뻑 빠져서 며칠동안은 굉장히 열심히 플레이를 했습니다.

엔딩을 본 후에 새롭게 추가된 내용들, 그리고 그제서야 새로운 지역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3세대 새로운 포켓몬들.. 나름 훌륭한 전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복돌이 아니라 실제 팩으로 실제 게임기에서 즐길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워낙 오래된 게임들이라 물량도 없고 프리미엄이 붙어서 구하지 못한게 매우 아쉽긴 합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도 계속 고민중입니다 구작들을 다 구해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ㅠㅠ

3DS 입성.

그러던 와중에 아이폰으로 플레이하던 파이어레드 엔딩을 보기 약간 전에 국전에 친구와 함께 가서 기어코 닌텐도 3DS XL (일명 큰다수)를 지르게 됩니다. 솔직히 이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3DS를 단순히 포켓몬 하려고 지르게 된 자신이 놀랍기도 했구요. 아무튼 기기 자체에 욕심이 있었던건 아니라 중고품 있던걸 싼 가격에 잽싸게 집어왔습니다. 이게 몇년만의 휴대용 게임기인가, 몇년만의 포켓몬인가, 기타등등 들뜬 마음에 돌아오는 길에 충전기가 들어있던 제품 박스를 분실하는 바람에 (다행히 본체는 가방에 따로 넣어서 큰 사고는 면했습니다만) 충전을 못해서 며칠간 눈앞에 봉인해두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ㅠㅠ (다시한번 남는 충전기를 나눠주신 Leviathan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포켓몬스터 Y를 플레이해보다

이렇게 다시한번, 포켓몬을 시작하게 됩니다. 10여년만에 다시 해본 포켓몬스터 최신작 게임은 여러모로 플레이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었는데요. 가뜩이나 5세대(DS)에서 6세대로 넘어오기만 해도 6세대인 XY버전은 파격적인 변화라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저는 그 사이 게임을 하나도 해보지 않고 3세대(GBA)에서 6세대(3DS)까지 바로 점프했기때문에 처음에는 꽤나 낯설었습니다. 마을 돌아다니는 시점이 완전 3D로 바뀐것은 신선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좀 불편한 감이 많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다른 콘솔처럼 좌우 아날로그 스틱이 있어서 움직이면서 시점을 변경할수 있는것도 아니어서 게임내 미리 지정된 카메라 앵글만 나오다보니 돌아다니는 여러 애로사항이 꽃피었습니다. 특히 Lumiose City(미르시티)는.. 후..

여담으로 저는 1세대 2세대를 모두 영문판으로 접했기 때문에 XY를 시작할때 언어를 영어로 골랐습니다. 한가지 포켓몬에 대해 좀 아쉬운 점이라면, 로컬라이징도 좋지만 나라마다 포켓몬 이름이 다 달라서 온 세계 플레이어들과 소통하는 시대에 너무 지역별 이름으로 파편화가 되지 않은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포켓몬 4세대부터 국내 정식 수입되기 시작할때 포켓몬 이름 로컬라이징때문에 좀 논란이 되었던것같기도 한데요, 아무튼 저는 한글이나 일본판 이름은 90%를 모릅니다 넵(..)

배틀화면에 포켓몬 모델을 풀3D 모델링으로 재구현한 것은 가히 칭찬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700여 마리나 되는 그 많은 포켓몬을 일일히 모델링하는 수고에다가 본 작에 추가된 Pokemon-amie(포켓파를레)라고 하는 포켓몬을 데리고 쓰다듬고 먹이주고 같이 노는 미니게임?이 생겼는데 그 안에서 나오는 고유의 모션이라든가 울음소리 등을 전부 만들었다는게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매우매우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캐릭터 외형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 의상을 상점해서 구입해서 바꿀수 있고 헤어스타일, 컬러까지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참 좋은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때문에 망설임 없이 여캐를 선택했습니ㄷ.. 세레나가 참 이쁘죠 네^^

반면에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하단의 터치 스크린을 그닥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마을 돌아다니는 화면이 3D로 바뀐만큼 하단에 2D의 미니맵이라든가를 보여줬다면 참 편리했을것같은데요. 던전같은 곳은 애초에 길 모른 채 막 누비고 다니고 야생 포켓몬 만나서 싸우고 하는게 묘미라고 하실 분도 있긴 할것같습니다만, 다른곳은 몰라도 도시 안에서는 맵좀 보여줘도 되지 않나 싶었네요.

위 사진이 문제의(..) Lumiose City입니다만, 저 도시에 한해서만 시점이 거의 완전히 앞을 보는 구도로 바뀌어서, 참.. 돌아다니기 힘들었습니다. 도시 구조 자체도 원형에다가 온갖 사이 길들이 많아서 길 헤메기 딱 좋다고 할까요. 외부 공략 맵이 필수였습니다(..)

3DS를 깝시다 3DS를

그와 별개로 한가지 좀 까고싶은건, 게임 자체보다도 역시 Nintendo 3DS 콘솔 자체. 초기 게임보이와 어드밴스와 DS와 DSi를 거쳐 나름 진화해오긴 했지만, 3DS의 하드웨어가 도저히 2014년에 알맞는 스펙의 하드웨어라고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모바일 기기 화면이 고밀도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로 일반화되면서 허들이 급격히 높아졌다는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도 피할수 없는 트렌드니까요. 옆동네 PS비타만해도 디스플레이가 납득할만한 수준인데 3DS는 아무리 3D화면을 채택해서 그렇다 해도 픽셀 피치가 쉴드를 쳐줄수가 없습니다(..) 그래 해상도가 낮으면 성능이라도 좋은가 하니, 그것도 아닌것 같은게 포켓몬스터같이 단순한 셀쉐이딩에 모델 몇개 넣고 배틀하는데도 공격 효과가 좀 나면 3D모드가 켜진 상태에서는 프레임 저하가 상당합니다. 게다가 포켓몬 2마리 이상 나오는 더블배틀에선 아예 3D 자체가 안 됩니다. ㅋㅋㅋ 도시 마을 돌아다니는 시점에서도 아예 3D가 활성화가 안 되구요. 이럴거면 3D 뭐하러 넣었냐 역시 3D는 그저 장식이지

화면이나 성능 외에도 좀 아쉬운건 많았는데, 와이파이 기능도 최근의 일반적인 모바일 기기의 기준으로 생각할때 너무 약한 것 같습니다. AP를 3개까지밖에 등록할수 없다는거, 그리고 미리 설정 앱에서 등록해둔 것만 연결할 수 있다는거 (그리고 게임중에 본체 설정을 들어가려면 게임을 종료해야한다는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3DS 소프트는 본체 설정입니다 엄연한 소프트웨어죠 네^^) 내장 웹브라우저도 있긴 하지만 그저 장식일 뿐이고.. 역시 기본 콘솔 프로세싱 파워가 딸리니까 뭣도 안되는것 같습니다. 위 화면으로 게임 하면서 아래 화면에 웹브라우저 띄우고 와이파이로 공략을 검색해서 지도를 놓고 플레이한다든가…라는건 그저 그림의 떡. 한 2020년정도 되면 닌텐도가 각성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기계를 2013년에 내놓고도 미친듯이 팔리는걸 보면 역시 기계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하지. 라는 말이 매우 격하게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만, 좀 아쉽긴 합니다. 뭐 닌텐도는 애초부터 경쟁사 신경 안 쓰고 독자 노선으로 혼자 따로 논다는 느낌이라 상관 없는걸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어느순간 3DS는 그냥 하드웨어에는 관심을 끄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포켓몬 하려고 산거기도 하니까요. 게임 자체는 매우 재미있게 했고, 엔딩 후에도 나름 즐길 거리가 풍부한것같아서 이제 뭐를 목표삼아서 플레이할까 열심히 궁리중입니다. 플레이어 배틀같은건 몇번 해보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을것 같아서 시도 안하기로 마음먹었고, 천천히 도감이나 채워보려고 합니다. 과정에서 구작 게임들을 더 사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해봐야 알 것 같네요.

* * *

결론적으로 마무리 짓자면, 요 몇주간은 참 오랜만에 추억에 젖는 시간이었던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가 나이를 먹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재미있는 관련 추천 영상 하나 링크해봅니다) 어릴적처럼 뭣 모르고 마냥 재미있게 놀던 때는 지났고, 이제는 게임을 원하면 언제든지 무엇이든 구할수 있는 자금력은 생기긴 했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고, 게임을 할때도 공략을 봐야하고 어떤걸 어떻게 해야하고 어떻게 채워야하고 완벽하게 빠짐없이 즐겨야한다는 나름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 그만큼 많이 알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과연 정말 즐거운 게이머의 자세인가 싶은 생각도 많이 듭니다.

게임은 결국 즐기라고 있는거니까요. 게임 하다가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라면 본말전도라고 생각되는게, 파고드는 정도도 잘 조절해야 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