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 (2015) 감상

2015/05/24 16:02
포스터 이미지 출처: CGV 공홈 (http://www.cgv.co.kr/movies/detail-view/?midx=78240)

어제 본 영화 ‘스파이’에 대해 뒤늦게나마 좀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사실 원래는 별로 관심도 없고 볼 계획도 없었던 영화지만 뭔가 친구와 오랜만에 영화 보자는 제안에 현재 개봉중인 매드맥스와 스파이 둘중에 뭘 볼까 생각하다가 막 다 부수기만 해서 정신 없을 것 같은 매드맥스보다는 스파이쪽이 낫겠지 해서 후자를 골라서 보러 갔다.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제작진 대해서는 전혀 사전 정보가 없었고 버스였는지 지하철역 지나가다였는지 트레일러 일부를 잠깐 본 정도인데 전형적인 첩보액션 영화에 코미디를 가미한, 생각없이 웃으며 볼만한 영화겠지 싶었다.

이건 뭐 예상했던 것과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고 스파이영화답게 반전 전개라든가 구성도 지루하지 않고 많이 웃기도 했는데… 문제는 대부분 경우 웃는 이유가 등장인물들의 미친듯이 비속어로 무장된 말빨이였다는 점. 음,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면 반년 안에 내가 주변에서 들을만한 (영어) 비속어를 1시간 내에 더 많이 들었다는 느낌? 영화 초반에 등장인물중 한명이 F 단어를 외치기 시작할때부터 ‘아, 걸려들었구나’ 싶으면서 느낌이 안 좋기 시작하더니 이후로는 그냥 여자 남자 할거 없이 여기저기 욕 천지가 되었다. 물론 익살스러운 느낌을 위해 한거라는건 전해졌지만 듣는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욕도 욕이고 단순히 우리나라 영화들에서 흔히 분노나 감정 표현으로 씨X 라고 나오듯이 한것도 아니고 그냥 대놓고 19금 소재로 서슴없이 극중 인물들끼리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장면들이 나오다보니… 그런데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거 빼고는 ‘눈에 보이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장면은 별로 없었던지라. 그래서 놀랍게도 이 영화가 국내 개봉할때 15세 이용가로 판정을 받은건가 싶기도 하고.

주연 여배우가 Melissa McCarthy였는데 극중 다른 등장인물로부터 계속해서 특유의 뚱뚱한 체형과 외모때문에 놀림과 비하을 받는 대사나 장면이 많이 나온다. 사실 이게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가 될 수 있는 핵심 요소중 하나기때문에 애초부터 캐스팅을 그렇게 한 거겠지만… ‘애초에 뚱뚱한 첩보요원이라는게 존재할 수 없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설정으로 그 우여곡절을 그려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려고 한 것이란 건 납득이 가지만 이것도 보는 내내 그다지 마음이 완전히 편치만은 않았다. 비슷하게 국내 코미디빅리그같은 슬랩스틱류 개그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가 사람의 체형이나 외모 등을 가지고 서로서로나 자기 자신을 비하해 웃기려는 소재가 많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게 다 다르겠지만 그런걸 보면 웃기긴 웃길수 있어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뭔가 눈살찌푸려진다고나 할까. 꼭 저렇게 사람을 놀려서 웃겨야 할까 싶기도 하고.

근데 한편으로는 쓸데없는 참견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는 체형이 상당히 마른 편이라 찌고싶어도 잘 안 찌는 부류이긴 한데 반대의 경우로 살을 빼고싶어도 못 빼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것도 알고 있어서… 외모에 대해서는 최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언급을 안 하거나 말을 조심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주의다. 영화배우들은 대체로 잘생기고 근육질이나 몸매가 잘 빠진 사람들이 많다는게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간혹 그런 특수한 체형으로도 유명한 배우들이 있다. 이 영화의 주연 여배우도 아마 그런 이유로 기획되었던 내용의 여주인공의 설정에 잘 맞았기 때문에 캐스팅된게 아닐까 싶은데. 그러면 자기가 그런 이미지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괜히 멀쩡한 사람 대신해 걱정해준다고 설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건 그냥 내가 이런 류의 ‘dirty’한 코미디엔 잘 안 맞는것 같다는 거. 가끔은 이런것도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웃어넘기고 볼 수 있으면 차라리 편할텐데 싶기도 하고… 만날 건전한 디즈니 영화만 골라볼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사실 현실적인걸로 따지면 멀쩡한 어른들 나오는 영화에서 욕 한마디 안 나오는 사회가 더 비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욕설 없는 비현실적인 사회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