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e Textcube. Hello WordPress.

2020/05/22 21:00

2007년 블로그 시작부터 오늘까지, 13년을 함께해왔던 블로깅 플랫폼이었던 텍스트큐브를 결국은 떠나보냈습니다. 이 블로그는 2020년 5월 19일 새벽 1시를 기점으로, 워드프레스를 기반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어쩌다 텍스트큐브

어쩌다 텍스트큐브(이하 텍큐)를 블로깅툴로 채택하게 되었는지도 생각해보면 좀 사연이 있는데요. 처음 블로그를 운영해보려고 이것저것 찾고 있었을 2007년 당시에도 당연히 블로깅 플랫폼의 대세는 워드프레스(이하 워프)였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백지던 상태에 사실 처음 손에 잡아본 것도 텍큐가 아닌 워프였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2007년 “xenosium.com”이라는 도메인으로 웹에 처음 올라갔던 블로그의 페이지가 워프였던 적이 있습니다. 다만 블로그를 열고싶은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생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커스터마이즈하는 점’이었기 때문에, 기본 테마에 만족하지 못하고 테마를 뜯기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php라는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2007년 당시의 제 자신을 떠올리면…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었던거같은데 오히려 그 때 블로그를 열어서 나름 스킨도 만들고 했다는게 지금 들으면 신기할 정도로 정말 아는게 없었던것 같습니다. 고작 2005년~6년 사이에 (아직 외국에 있던 시절) 혼자 취미로 위지윅 에디터를 이용해 깨작대던 html/css 지식이 전부였던것 같은데… 진짜 어케했노 13년전의 나여??

아무튼 그래서 지금도 php를 할줄 안다고 말은 못하는 수준이지만 그때는 진짜 코딩알못이었기 때문에 “브라우저에서 html파일을 열어서 화면에 보이는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이미 너무 어려워서 포기를 했었습니다. (스킨 템플릿이 php기반이라 로컬이든 리모트든 서버를 돌려야 페이지 빌딩이 되니까 말이죠) 다른 대안을 찾던 도중, 텍스트큐브 (태터툴즈..도 같은데 당시에 태터툴즈로 시작을 했다가 마이그레이션을 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요)의 스킨 구조는 워드프레스보다는 훨씬 단순하게, 단일 skin.html이라는 파일에 각종 동적으로 컨텐츠가 들어가는 부분이 치환자 형태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로컬에서 복잡한 절차 없이도 단순히 파일을 편집해 저장하고 브라우저에서 열면 수정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제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다른 차이점, 장단점을 다 제쳐두고도 이거 하나만 보고 텍스트큐브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와서 보면, 만약 그때 텍스트큐브로 블로그를 안 열고 처음부터 워프를 썼다면 2010년 초중반 당시 제 삶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블로깅 라이프의 모습이 많이 달랐을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국산 블로깅 플랫폼으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교류도 자연스럽게 한국 블로거들이 많아지게 되고, 이때 알게 된 인터넷 지인분들중 지금까지도 트위터로나 기타 방법으로 연락이 닿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구요. 요즘에야 워프를 쓰시는 국내 블로거들도 꽤 계시지만—그와 별개의 이야기로 블로고스피어(이런 단어도 이제 쓰면 아재소리 들을거같네요…) 자체가 많이 축소되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때는 한국에서는 이글루스, 태터툴즈 계열(태터툴즈, 텍큐, 티스토리) 블로그가 막강했으니까요.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다

텍스트큐브와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느끼기 시작한건 이미 수 년 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모바일이 등장하고, 새로운 웹기술의 등장에 따라 많은 변화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에 블로그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건 그냥 전반적으로 ‘개인 블로그’라는것 자체가 더 간편한 SNS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던지라 단지 텍큐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좀 그러네요. 하지만 타 플랫폼에 비해서도 텍큐의 개발이 더디게 된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버의 php 버전이 올라가면서 플러그인 호환성이 깨져 더이상 쓰지 못하게 되고, 설치형 블로그끼리 연결해주던 수단이었던 커뮤니티 (이올린, 올블로그 등)도 하나 둘씩 없어지고, 아는 분들은 아실 ‘텍스트큐브닷컴‘이라는 흑역사사건도 있었고, 유저들이 빠져나가고 개발에 기여하던 사람들도 여러가지 이유로 자취를 감추고… 무엇이 먼저였을까 싶지만 아무튼 서서히 무너져 갔습니다.

이런 시기들을 지나오면서 블로그를 다른 플랫폼으로 이전할까 생각을 수차례 하긴 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몇년치의 글을 옮기는 작업이 엄두가 안 나기도 했고, 몇 번씩 대안 플랫폼을 찾아봤지만 내가 해왔던걸 그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드는걸 찾지 못해서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설치형 블로그의 장점이랄까, 운영업체가 서비스 종료한다고 해서 강제로 이주하거나 블로그 문 닫아야되는거 걱정할 일은 없으니까요. 당장 내가 서버 php 버전 올리거나 뭐 하지 않는 이상 블로그는 망가지지 않았고 그대로 돌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아직은 텍스트큐브는 살아있었습니다.

텍스트큐브, 호흡기마저 떼다

저는 텍스트큐브 개발팀의 일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말씀드릴수도 없지만, 제가 아는 한도에서 오픈소스 프로젝트로써의 텍스트큐브는 2010년 텍스트큐브닷컴 사건을 거친 이후에도 그래도 어느정도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레거시 1.0 트리의 단점을 많이 개선한 메이저 버전업인 2.0트리를 위주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저는 이게 금세 나올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것도 그럴것이 텍스트큐브닷컴이 2.0트리(의 알파/베타버전?) 기반으로 런칭을 뙇 했었으니까요……근데 형이 먼저 죽을줄은 몰랐지 아무튼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개발 진척이 있었던것 같긴 한데 결과적으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텍스트큐브 2.0 정식버전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2017년경 제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 블로그 내 자동생성되는 링크를 http에서 https로 바꿔주는 SSL옵션을 대시보드에 추가하는 (야매로 짠) 코드를 만들었었는데 이걸 PR로 보낸게 그대로 1.10버전에 반영될 정도로 (솔직히 당연히 빡구먹을줄 알았습니다 왜냐면 나는 php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개발에 기여하는 커뮤니티는 그냥 전멸 상태였습니다. 2017년이나 되어서까지 “어쩌면 텍큐에 미래가 아직 있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 래 도 2018년까지는 뭔가 텍스트큐브 코드베이스에 뭐라도 커밋이 올라오거나, 최소 새해가 되어 연도 마크를 변경하는(..) 정도의 변화정도라도 있었지만… 2019년이 되어서는 그것마저도 없어지고, 시간이 멈췄습니다.

이젠 정말 갈 때가 된거죠.

P.S.: 감사합니다

참고로, 텍스트큐브 개발을 주도하시던 분들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아쉬운건 사실이지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라는게 결국은 전부 자선사업이나 마찬가지니까요. 테크 업계에서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한지도 벌써 6년차에 접어들고 있고, 돈이 되는 본업이 아닌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만들어 유지한다는게 얼마나 큰 헌신인지 여느때보다 더욱 실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 속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젊을때 취미로 시작했다가 취업을 해버려 너무 바빠진 분도 계실테고, 가족을 꾸린 분도 계실수 있을거고. 그냥 관심이 없어져서 손 뗀 분도 계실거고. 이런저런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제까지 텍스트큐브 프로젝트에 다방면으로 기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워드프레스로 오는 길

텍스트큐브/태터툴즈는 그래도 여타 국내 블로깅 플랫폼에 비해서는 (아마도?) 비교적 타 플랫폼으로 마이그레이션 하기에 용이한 형식의 백업 데이터를 떠주는 장치가 있었던 덕분인지, 텍큐의 시대가 저물어가며 많은 분들이 티스토리 또는 워드프레스로 이주를 하셨습니다.

저도 만약 언젠가 옮기게 된다면 아마 워드프레스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앞서 말했던 대로 엄두를 못 내고 있었기 때문에 몇년간 반쯤 방치 상태에 있었는데, 그동안 본 블로그의 서버 호스팅 및 다방면으로 기술적인 도움을 주셨던 지인분의 손길을 (좀 많이 빌려서) 결국 마이그레이션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이거 블로그 이전하려면 어디 호텔 잡아서 한 이틀간 작정하고 틀어박혀서 해커톤 스타일로 작업하면 옮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종종 하긴 했었는데, 진짜로 이번달 초 연휴에 반쯤 휴가 느낌으로 간 호텔에 틀어박혀서 큼지막한 데이터 변환 작업을 하고, 테마 변환 작업에 착수해서… 5월 5일부터 약 3주에 걸쳐 짬내서(라고 쓰고 며칠간의 연속 밤샘이라 읽습니다) 워드프레스 버전의 테마 구현을 완료했습니다.

마이그레이션을 도와주신 지인분에게는 정말 몇번이고 표현해도 모자를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무엇이 바뀌었나요

아무튼 그렇게 뒷단의 플랫폼이 통째로 바뀌었지만, 겉보기에는 바뀐게 없으실 겁니다. 바뀐걸 눈치 못 채셨다구요? 그러면 작전 대성공입니다. 깨진게 없다는 뜻이거든요 😂 아, 맞아. 방금 쓴거처럼 이모지를 드디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9년씩이나 됐는데 이모지를 지원하지 않는 블로깅 플랫폼은 정말이지 너무 괴로웠습니다…

디자인이 크게 바뀌진 않았고 대부분 기존 디자인 그대로 유지하려 했지만 근본적으로 워드프레스의 출력 방식이 텍스트큐브와 다른 부분도 있기도 하고, 기왕 만드는 김에… 하면서 조금 손 본 부분들도 있긴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새로 생긴 Archives 페이지가 있겠군요. 텍큐를 쓰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중 하나가 커스텀 페이지 추가나 각종 페이지에 표시되는 내용을 커스터마이징하기 어려웠다는 점인데요. 이제 카테고리 페이지에 서브카테고리를 보여준다든지 설명 글을 보여준다든지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좀 더 정갈하게 컨텐츠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이그레이션 한다고 했을때 제일 먼저 걱정되었던 기존 글 주소가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는…. 결국에는 기존 글의 주소 (xenosium.com/xxx 형식의 번호 주소) 목록을 수동으로 워드프레스쪽의 신규 글주소로 서버단에서 리다이렉트하게 하는 식으로 했습니다. 이 부분도 지인분이 도와주셨습니다 🙇‍♂️ 저는 정말로 테마 변환 작업밖에는 한게 없네요 실제로는 😂


아무튼 그렇게, 제노시움 (13세, 블로그)는 바야흐로 워드프레스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워드프레스라고 만능은 아닌게, 테마 작업을 위해 문서를 들여다보고 하다보니 여기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뿌리가 깊은 동네라 레거시의 고통이 없는 건 아니구나 싶더군요. 아무튼 제가 이래저래 적응해야하는 부분도 많이 있고, 아직 미처 보지 못한 과거 글 컨텐츠가 깨져있는 것도 많이 숨어있겠지 싶어 천천히 고쳐나갈 생각입니다.

새로 신설한 아카이브 페이지를 달력처럼 월별로 표시하고 글이 있는 경우에만 링크 불이 들어오게 만들었는데, 만들어놓고 보니 작년은 얼마나 눈에 띄게 블로그 글작성이 뜸해졌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서 새삼 놀랐습니다. 애초에 이 글이 2020년 되어 처음 올리는 글이니까 말 다 했죠 ㅋㅋㅋ

보통 오랜만에 이런 글을 쓰면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인삿말을 하곤 했던거같은데 이런 빈말 약속조차 차마 못 할것 같네요. 그만큼 주변 환경도, 내 일상도, 블로그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블로그에 담겨있는 기록이 하나하나 소중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새 글을 쓰기 힘들다 해도 이쁘게 잘 보존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텍큐보다는 생존 가능성이 좀 더 올라간 워드프레스로 옮겼으니 이전보다 더 맘놓고 방치하게 되려나요?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