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생각
최근 주변에서 죽음의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최근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도 있고, 이외 많은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의 소식들을 듣는다. 나의 경우에는 작년 11월에 친할머니, 올해 2월에 친할아버지, 그리고 짧은 간격으로 지난달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의도치 않게 반년만에 3번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었다. 이전에는 내가 아직 어렸기도 했고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들어도 나와 그리 가까운 사람이었던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별로 생각을 안 했던것 같은데 어릴때의 기억들과 요 최근까지만 해도 인사드리고 이야기 나누었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떠나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느낌이 몸에 와닿는것 같기도 하다. 죽음.
사람은 누구나 한번씩은 죽는다―라는 클리셰스러운 문구가 떠오른다. 나이가 많아서 병들어 투병하다 죽든, 사고를 당해서 한순간에 죽든, 죽는 방법과 가는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누구나 ‘한번씩만’ 죽는다는것이 공통점이다. 내가 죽음의 순간에 처해본적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하기도 좀 웃겨보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두려움이 없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 이 세상에서 죽는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이후에 고통 없는 세상에서의 영원한 삶이 있다는것을 믿는 것에는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고 육과 혼이 분리되는 그 ‘마지막의’ 순간에 이르는 그 시간, 과정이 나는 과연 어떨까 최근 많이 생각하게 되는것 같다.
누구나 ‘한번씩만’ 죽을수 있기에, 자신이 죽어가고 있을때 느끼는 감정, 생각, 몸이 느끼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 감상(?)을 살아있는 자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간혹 죽음을 체험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왔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있긴 하다만.. 글쎄.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서도 그런 사람들의 체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타입은 아닌것 같다.
수많은 영화들과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등장 인물들의 극적인 죽음을 묘사한다. 하지만 이 또한 실제로 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상상’일 뿐이다. 총에 맞은 순간, 물에 빠져 익사해가는 시간, 높은곳에서 낙하해 죽음을 앞둔 불과 몇초간의 시간과 지면에 닿는 순간. 최대한 현실적으로 노골적으로 묘사한다고 해도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감독의 상상이며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일지는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 고통이 상상 이상일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그 이하, 생각하고 느낄 틈도 없는 짧은 찰나일 수도 있고.
요는 결국 자기가 직접 죽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죽음이 실제로는 어떤지 모른다는 말이다.
최근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문을 바라보거나, 이따금 멍하니 있는 때가 되면 이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것 같다. 이 세상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언제든지 어떻게든 죽을 수 있다. 라는 되새김. 경각심? 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사고같은 죽음의 순간이 닥치면 제 아무리 준비를 했다 해도 피할수 없는 것이 연약한 육체를 입고 있는 무력한 인간의 현실인지라. 물론 나는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기때문에 최소 한가지 위험(?)은 덜었다고 할수는 있지만 그러나 나 역시 언제나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죽게 될까? 내가 죽는 순간 느끼는 것들은 어떤 것일까? 많이 아플까? 아니면 순식간에 기절하듯이 눈앞이 깜깜해지고 정신을 잃고 끝나는 것일까? 내가 죽으면 남겨진 가족들, 친구들은 어떡하지? 많이 슬퍼해주려나? 그래도 기왕이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으면 좋을텐데. 아픈건 질색이라. 살아있을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가능성도 물론 있다. 그러면 살아서 환난을 다 겪어야 한다는 말인데… 믿음 지키려다가 고문당해 죽을수 도 있고.. 도망다니면서 살아야하나, 기타등등 이하생략 이하생략.
뭐, 열심히 상상하고 생각한다고 해봤자 대처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저 지금 이 순간, 매일 매일에 주어진 것으로 열심히 살아가는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아직까지 나를 살게 허락하시는 이유라고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