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fire Audio Lyra II 구입기 및 후기

2016/11/22 23:47

새로운 이어폰을 들였습니다. Campfire Audio사의 Lyra II라는 모델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작년 12월에 (벌써 거의 1년씩이나 됐군요) K3003을 구했다가 좋은 의미로 귀를 버리고(?) 몇주도 안 되어 방출한 이후로 사실상 대체제를 찾지 못하여서 그럭저럭 만족하는 UE900 그냥 안고 살아야지 해서 생각을 접었기 때문에 새 이어폰을 살 계획은 사실상 전혀 없었는데요. 갑자기 기변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지난 주 다녀온 일본 여행중에 UE900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케이스에 고스란히 넣은 채로 나고야역 전망대의 창틀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는 이미 다른 도시로 떠나는 기차가 한참을 가고 난 이후였던 지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ㅠㅠ

4년동안 함께 해온 녀석이라 이렇게 갑자기 떠나보내게 되어 아쉽기도 하고 기차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중고가로 따져도 최소 25만원은 되는 걸 잃어버린거라 타격이 크기도 하지만 아까운 것 보다도 일단 당장 쓸수있는 이어폰이 없어져서 어쩌지 싶은게 더 크더군요. 오락실에서 이어폰 필요하다고!! 임시로라도 뭔가 저렴한걸 구해야하나 생각이 들기도 싶고요. 뭔가 들어보고 고르려면 최소 도시로는 가야 요도바시같은데를 갈 수 있다보니, 여행 일정상 이틀정도가 지나고 나서 도쿄에 1박 머문 날에 대체제를 찾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K3003 이후에도 몇번 국내 이어폰샵 등지에서 다른 이어폰들을 청음해본 적이 있지만, 이어폰에 있어서는 K3003의 임팩트가 너무 강했던지라 현재 성향에 맞으면서 그정도 수준의 해상력/고음을 보여주는 걸 발견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생각해두고 있던 후보라고 할만한 녀석이라고 하면, 올해 여름에 AKG에서 새로 출시한 N40 정도일까요. K3003과 비슷한 식의 하이브리드 인이어 + 필터 교환식 디자인이어서 K3003의 후속이 나온 걸까 하는 이야기가 돌았던게 기억이 나서, 한번 찾아서 들어보기로 합니다.

그래서 점원에게 물어봐서 N40을 찾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가 조금 재밌습니다. (길어져서 접어두었습니다)

[나]: (점원에게) AKG N40이란 제품을 찾고있는데…

[점원]: 이쪽이다

[나]: 들어보니 팁이 작아서 소리가 새는데 팁 교체 가능한가?

[점원]: 팁 바꿔주겠다

(오픈된 청음대에서 조금 이동해 고가형 제품들이 모여있는 유리 전시장쪽으로 인도하고, N40의 팁을 교체해줬다)

[나]: (잠시 들어본 후 뭔가 베이스가 엄청 쎄다 싶더니…) 그러고보니 이거 필터 교체할수 있는거 있지 않던가

[점원]: 맞다. 지금 베이스 부스트가 껴있다

[나]: (무릎탁) 그럼그렇지 레퍼런스(노멀)로 바꿔껴줄수 있나

[점원]: 그러겠다

(팁을 빼고 필터를 교체해주는 도중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점원]: 일본에 살고 있나?

[나]: 아니다 여행중이다

[점원]: 오 일본어 잘 한다. 일본은 처음 온건가?

[나]: 아니다. 꽤 많이 왔다 (웃음)

[점원]: 애니메이션 좋아하나? (아까 청음할때 아이폰 화면에 이것저것 여러가지 덕음 앨범쟈켓이 뻔히 보였었다)

[나]: 그렇다.

[점원]: 일본은 좋아하나?

[나]: 뭐.. 그렇다.

[점원]: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돌연 꾸벅 인사를 한다)
일본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하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있냐

[나&친구]: (끄덕) fhana라든가… (아이폰에 떠있는 fhana 최신 정규앨범 ‘What a Wonderful World Line’ 쟈켓을 보여준다)

[점원]: 오 화나 나도 大팬이다. (주머니에서 본인 AK플레이어를 꺼내 화면에 떠있는 똑같은 앨범을 보여준다) 아이폰도 좋지만 하이레조로 들으면 최고다 (웃음)

[나&친구]: (하하하)

[점원]: (하하) 자 N40 한번 들어보라.

[나]: (제대로된 필터와 팁으로 청음을 해보니 나쁜 소리는 아니지만 역시 이 가격을 주고 사기엔 부족한 소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음.. 나쁘진 않은데 역시 뭔가 부족한것 같다.

(돌아서려고 하다가, 기왕 이것저것 이야기 많이 나눈 참에 한번 추천을 부탁해보기로 한다)

[나]: 내가 원래 ue900을 썼는데 잃어버리고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새 이어폰을 찾고있는데 집에선 K712를 쓰고있고 비슷한 소리의 이어폰을 찾는다. K3003이 굉장히 좋은데 아웃도어에서 쓰긴 그렇고 N40을 들어봤는데 이건 좀 아닌거 같고 아무튼 플랫에 가깝고 베이스 너무 쎄지 않고 하이가 맑은거 없나?

[점원]: ie800이란게 있는데…

[나]: 아 그거 (옆에 같이 있던) 이 친구가 쓰고 있다 (웃음). 들어봤는데 좋지만 저음이 내 취향보다 좀 많은거같다.

[점원]: 아 그러냐(웃음) 그렇다면… (잠시 생각하더니) 궁극(究極)이,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 반대편의 유리 전시장쪽으로 인도하더니 안의 한 이어폰을 꺼내준다. 힐끔 보니 이쪽 전시장 안에 있던 제품은 JH Audio… AK… 가격이… 이하생략.)

[점원]: 캠프파이어 오디오라는 회사의 제품인데, 한번 들어보라.

[나]: 처음 들어보는데… 일본 회사인가?

[점원]: 미국이다.

(일단 전달받은걸 들어봤다. 그땐 처음 본거라 모델 구분을 못하니 잘 모르고 들었는데 처음 들었던건 아마 Nova거나 Orion이었던것 같다)

[나]: 팁이 안 맞아서 소리가 새는 것 같다… (그리고 유닛이 메탈 재질인데 디자인이 너무 각져서 귀가 아플것 같다)

(처음들어보는 회사기도 했고 별로 기대를 안 했던지라 더 적극적으로 청음해보고 싶은 의욕이 없어서 이어폰을 귀에서 뺀 뒤 돌려주려고 하던 참에…)

[점원]: (그 옆에 있던 다른 제품을 본인의 AK 플레이어에 꽂아서 건네주며) 이건 Lyra II라고 일본에 어제 발매된 제품인데, 아마 소리 좋아할것 같다. 한번 들어보라.

(이건 아까거보다 유닛이 더 작고 모서리가 곡선처리 되어있고, 팁이 폼팁이다. 최소 팁은 교체 안하고 청음 할 수 있을것 같다)

[나]: (청음을 해본다) 어… 소리가 괜찮다?

[나]: 내 아이폰에 직접 꽂아서 한번 들어보겠다. 이제 이래놓고 소리가 차이가 난다면 난 아스텔앤컨 플레이어를 살 수 밖에 없게 되겠다 (하하하)

[점원]: (하하하)

[나]: 아, 다행히 소리는 똑같은것 같다. (웃음) 근데 이어폰 소리 진짜 괜찮은데? 보아하니 같은 회사 다른 이어폰중 더 비싼것도 있는거같은데…

[점원]: 그건 그런데 소리 성향이 다 달라서 가격만 비교해서 어느쪽이 더 우월하다고 하기 어렵다. 어제도 한 고객이 세 모델을 다 들어보고는 Lyra II가 가장 저렴했지만 소리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고 이걸로 구입했다.

[나]: 아.. 소리는 진짜 딱 내 취향인거같은데 가격이… 가격이… 8만9천엔
(폰으로 이 처음 보는 브랜드의 제품을 한국에서 취급하기는 하나.. 가격은 얼마인지 검색을 해봤지만 신제품이라 그런지 Lyra II는 나오지 않고, 같은 브랜드의 다른 제품도 거의 검색결과가 없고 그나마 나오는 것도 더의 100만원 이상이더라)

[점원]: 캠프파이어 오디오 제품을 한국에서도 판매하나?

[나]: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검색해보니 딜러가 있는거같긴 한데 대체로 가격은 더 비싼거 같다.

[점원]: (여기서부터 본격 영업 시작) 어제 나온 최신 모델이라 한국에 아마 아직은 없지 않을까, 그리고 물량이 적은데다 인기가 많아서 빠르게 팔려나간다. 어제도 입고되자마자 한 명이 바로 와서 사갔다. 여기서 사가면 면세도 되고 비자카드로 하면 추가 5% 할인도 된다.(소곤)

[나]: (망설이며) 어.. 8만9천엔에 5%까지 하면 대충 얼마 나오냐

[점원]: (계산기를 꺼내며) 대충 8만3천까지 내려간다

[나]: 어.. 8만3천 환율 계산해보면….

(이하생략)

(※ 편의상 평어체로 썼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존댓말로 오고간 대화입니다. 재미를 위해 일부 첨삭된 부분이 있지만 실화를 기반으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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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새 이어폰이 든 작은 박스를 가방에 넣은 채 요도바시를 나서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내가 찾던 이상적인 이어폰이란

여기서 잠깐 제가 찾고 있던 이상적인 이어폰의 조건을 한번 나열해보자면:

  1. 고음이 맑고 선명하며, 음이 뭉개지지 않고 저음이 너무 세지 않을 것
  2. 인이어로써 차음성 성능이 좋을 것 (차음성이 후지면 볼륨을 크게 들어야 함)
  3. 리시버 유닛이 아웃도어용으로 쓰기에 적합한 튼튼한 재질일 것
  4. 리시버 유닛의 크기가 과하지 않으며 모서리가 곡선처리 되어있을 것 (장시간 착용시 피로 절감)
  5. 케이블을 귀 뒤로 넘기는 방식의 디자인일것 (아웃도어 사용시 케이블에 의한 터치노이즈 방지)
  6. 케이블 교체가 가능할 것 (표준 MMCX 단자 선호)
  7. 케이블이 L자 플러그일 것 (연결부 단선 방지)

K3003의 경우 리뷰 글에도 평가를 했지만, 위의 기준으로 보면 1번과 3번이 합격, 2,4,5,6,7번이 전부 불합격입니다. 반면 기존에 쓰던 ue900은 아무래도 K3003보다 음질 싸움에서는 지지만 나머지 조건이 대체로 다 맞아서 아웃도어용으로 오랜 기간 쓰기에 손색 없는 이어폰이었습니다. 실제로 잃어버리기 전까지 4년간 탈 없이 잘 쓰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만나보게 된 Lyra II는… 놀랍게도 위의 조건을 전부 만족했습니다. 사실상 가격만 더 낮았더라면 진짜 1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집었을 텐데 말이죠 (결국 사기는 했지만^^;)

Campfire Audio – Lyra II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박스는 처음 보았을때 생각보다 엄청 작아서 조금 놀랐습니다. 이정도 고가의 이어폰을 사보기는 처음이고 예전에 중고로 들였던 K3003은 패키징부터 나는 정가 130만원 하는 이어폰이야~ 하는 프리미엄을 뽐냈던지라 얘는 어떠려나 내심 기대했는데 말이죠. 직원이 가져온 작은 박스를 보았을때는 실망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2주간의 여행에 필요한 옷으로 이미 꽉 채워놓은 캐리어에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박스가 컸으면 큰일날 뻔 했…

구성품도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있어야할건 다 들어있습니다. 기본 실리콘팁 두쌍, SpinFit이라는 살짝 다른 디자인의 실리콘팁 4쌍, 여비 컴플라이 폼팁 2쌍 (기본으로 폼팁이 장착돼있습니다), 귀지 청소 도구…

그리고 이제와서 보니 사진 찍는걸 깜빡했는데 휴대용 가죽 케이스가 있습니다. (구입 직후 식당에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위 사진에 살짝 보이는 빨간색 파우치로 각 유닛부를 싼 채로 케이스에 들어있습니다.

케이블은 반투명한 재질의 꼬아진 형태로 되어있고, 좌우 대칭형 Y자 배치며 갈라지는 부분에서 당겨 조일수 있습니다. 표준 MMCX 커넥터로 되어있어 서드파티 케이블로 교체가 가능합니다. 유닛에 연결되어 귀 뒤로 넘어가는 부분에는 철심이 들어있어서 케이블 모양을 고정시킬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가장 현명한 선택인 L자형 플러그 채용.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 케이블은 Litz Cable이라고 단품으로 20만원정도 하는 케이블이라고 합니다(..) 멋져보이는 스펙을 좀 복붙해보자면 4심/은도금동선선/베릴륨 구리 MMCX 커넥터… 개인적으로 오디오 케이블은 어지간하게 발로 만든 품질이지 않은 이상 소리에는 별 차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뭐 20만원짜리 껴준다고 하니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이쯤에서 잠시 Campfire Audio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넘어갑시다. 저도 처음 들어본 회사였던지라 좀 찾아보니, 오디오 앰프나 고가형 커스텀 케이블을 제조하던 미국의 ALO Audio가 개인 인이어 모니터(IEM) 이어폰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브랜드라고 합니다. 핸드메이드+프리미엄 오디오 장비가 대개 그렇듯이 이어폰 가격대도 자연스럽게 그렇고 그렇게 형성이 된 듯… 이러니까 이제까지 몰랐지

공식 홈페이지에서 Lyra II에 대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 세계 최초 8.5mm 베릴륨 PVD(Physical Vapour Deposition – 물리증착법 도금) 다이내믹 드라이버
  • 세계 최초 리퀴드메탈(Liquid Alloy Metal) 이어폰 하우징
  • 다이내믹 드라이버에 네오디뮴 자석 사용

음.. 잘 몰르겟고 여하튼 튼튼하고 비싼 재질로 만들어서 신뢰성을 높이려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커스텀 리퀴드 메탈 공정으로 색까지 미리 입혀서 제작된지라 모 이어폰처럼 쿨럭ue900쿨럭 플라스틱 위에 도색이 벗겨지는 일은 있을수가 없겠네요. ‘Dusk’라고 이름붙혀진 색상은 밝은데서 보면 살짝 보라색 빛이 도는데 어두운 색이라 그렇게 튀지는 않습니다.

케이블, 튼튼한 외관은 전부 합격이고, 이제 가장 중요한 소리가 남았는데요.

너의 소리는.

이런 글에 항상 딸려오는 이야기긴 하지만 소리는 정말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라, 사실 글로 소리를 표현하는것이 별로 의미 없는 것일수 있기도 하겠습니다. 결국에는 본인이 직접 들어 보아야, 이제까지 들었던 소리에 비교해, 얼마나 어느 부분이 더 어떻고 어디가 어떻다 이야기할수 있는 것이라 그냥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느낀 Lyra II의 소리의 특징을 적어보자면

◆ 고음: 맑고 샤프한 편이다. K3003의 찌르는 고음에는 못 미치지만 오히려 K3003이 너무 과했던 것이라 생각하면 이쪽은 부담스럽지 않지만 밋밋하지도 않게 적당히 또렷하다.

◆ 저음: 개인적으로 찾던 음색에 비해서는 저음이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그냥 쿵쿵 울리는 저음이 아니고, 다른 주파수 구간의 강조가 있는 것인지, 어떤 곡을 듣느냐에 따라 어떨 때는 평소 (다른 이어폰 사용시)보다 저음이 덜하거나 더하거나 하다. 집에서 사용하는 K712 헤드폰보다는 확실히 저음이 많다.

◆ 공간감: 대체로 유닛 크기가 작고 귀를 틀어막는 밀폐식 IEM에서 공간감은 별로 논할거리가 없는 사항이긴 한데, 신기하게도 이 녀석은 공간감이 꽤 있다. 좌우로 펼쳐지는 정도가 상당히 넓어서 답답하지 않다.

◆ 해상력: ‘음분리’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같다. 앞서 저음이 취향보다는 꽤 세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이 조금 들었지만 극복하게 된 이유는 그정도 저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트랙의 악기간 소리의 분리가 정말 뛰어났기 때문이다. 즉 소리가 뭉개지지 않고 악기들의 소리가 나누어져 따로따로 구분이 되었다.

◆ 차음성: 기본으로 딸려오는 컴플라이 폼팁 사용시 평균적인 좋은 차음성을 보여준다. 유닛도 밀폐형 디자인이므로 소리가 새들어올 여지는 거의 없다.

Lyra II를 사고 한국에 돌아 온 뒤 한주정도 사용 한 후, Campfire Audio사의 다른 이어폰 라인업을 비교 청취해보기 위해 서울에서 캠파 제품을 취급하는 딜러인 강남사운드연구소(G Sound Lab)의 매장에 방문해서 잠시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Orion, Andromeda, 그리고 Lyra II의 전작인 Lyra를 들어봤는데 (일본에서 구입 전에 좀 더 비교 청취를 해봤어야하는데 후회가 되더군요. 그만큼 Lyra II의 임팩트가 컸던지라..) 느낀건 일단 Lyra 1세대는 같은 라인업답게 소리 성향은 비슷하지만 역시 후속은 후속인 만큼 Lyra II가 고음부가 더 개선이 된 느낌이었고, Orion/Andromeda는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아니라 BA를 채용한지라 소리 특성이 좀 다르고.. 미드레인지가 더 강조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들은 생각은, 내가 이제까지 나름 ‘플랫’한 레퍼런스에 가까운 소리가 취향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완전 플랫에서 고음과 베이스를 살짝 얹으면 결국 약하게나마 V자 모양을 띄게되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즉 Lyra II의 성향을 곡선으로 그려본다면 베이스와 고음이 강조된 V자. Orion/Andromeda는 Lyra II 에 비하면 훨씬 플랫한 사운드겠지만 이쪽이 제가 추구하는 사운드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스파이스가 가미되지 않은 완전 플랫한 소리는 전문적인 음악 작업을 할 때는 왜곡 없는 평준화된 소리를 위해 중요한 요소겠지만 개인적인 음악 청취에 있어서는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쪽이 취향인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약간의 왜곡을 넣어도 더 듣기 ‘재미있는’ 소리를 좋은 소리라 판단하는지라… 저도 나름 플랫 취향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완전 순수 플랫주의자(?)는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Lyra II는 제 취향에 썩 맞는 소리였습니다.

소리의 유일한 단점으로 꼽을만한 강한 저음부도 막상 듣다보니 뇌이징(?)이 된 것인지 그리 나쁘진 않고, 아웃도어에서 들을 때에는 오히려 외부 소음이 깔리기 때문에 저음이 그리 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걸 고려하면 딱 적당한 정도인것 같기도 합니다.

 

고가 이어폰에 대한 생각

2008년에 처음으로 나름 고가라고 할만한 이어폰을 청음해본 후 마음에 든 녀석으로 골라 사게 되면서 오디오파일의 구렁텅이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요. 몇 번의 기변을 거쳐 8년만에 결국 100만원에 가까운 녀석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정가로는 K3003이 더 비싸긴 하지만 중고로 샀던 것이고 결국 소장하지 않고 방출해버렸으니 노카운트라고 치면.

사람이 항상 그렇듯이 좋은 것을 맛 보면 올라갔을 때는 잘 몰라도 한 번 내려가보면 아 그게 얼마나 좋았던가 실감하게 된다고 하죠. 소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나름 이미 어느정도 높이 올라와서 만족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한 번 듣고 나니 역시 잊을 수가 없는 것이… 그래도 역시 이 가격대는 아직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허들이 높긴 했습니다. 정말 좋은 소리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정도 돈이나 주고 들을만한 것인가?

올 여름에 Zero Audio사의 Carbo Tenore 이어폰 ($38)이 한바탕 이어폰 가성비의 법칙을 깨트려서 하이엔드 이어폰 마켓과 커뮤니티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고 지나갔던 것을 생각해보아도 (궁금하시면 한번 검색해보시..거나 구입해서 들어보시길) 오디오 장비는 소재와 장치가 어느정도 레벨만 넘으면 그 후는 사실상 장치, 재질의 조합에 의한 차이와 튜닝을 얼마나 잘 하느냐의 차이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미세한 튜닝의 차이가 또 결과적으로 엄청난 소리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니까, 그 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 들어간 연구와 인력을 가격으로 치는 것이라면 이 무지막지한 가격이 그리 터무니없는 숫자이지만은 아닐것 같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제가 이번에 구입한 이 Lyra II가 Campfire Audio사의 다이내믹 드라이버 타입 이어폰의 라인업중에선 가장 저렴한 축($699)에 속한다는 점입니다. 그 위로 Dorado($999), Vega($1,299)가 있는데… 충격과 공포다 그지깽깽이들아 물론 가격이 높다 해서 항상 더 좋은 소리이지는 않겠지만 들어보지 못해서 뭐라 말은 못 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최소 몇년간은 다른 이어폰 욕심 안 부리고 만족하며 행복한 음감 생활을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만, 역시 미래는 모르는 일입니다. 8년전의 나는 상상도 못 했겠지 과연 호기심이 어디로 이끌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