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텀 기계식 키보드 근황 – GMMK Pro 각종 튜닝 & Cerakey 세라믹 키캡 장착

2023/07/29 01:32

2021년에 첫 커스텀 키보드 조립을 완성한 이래 벌써 2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키보드에도 이런 저런 변경들을 시도해봤다.

아래는 그 기록이다.

상판 (프레임) 변경

2022년 8월 즈음에 GMMK Pro의 상판을 흰색으로 바꿨다.

원래 GMMK Pro는 블랙과 실버 두가지 색으로만 나와있었는데, 실버가 꽤나 은색 그 자체인 색이라 키캡의 흰색과 꽤 이질감이 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Glorious에서 E-white를 포함한 추가 색상의 상판을 별도 판매하기 시작했고, Glorious 제품 국내 정식 수입사에서 해당 제품도 가져와주기를 기다리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현재 판매중) 어느날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다 괜찮은 가격에 중고 매물을 발견해서 덥석 물었다.

2022년 5월에 로지텍의 MX Master 3S가 출시하면서 기존에 쓰던 MX Master 3에서 업글했는데, 검은색에서 흰색(밝은 회색에 가깝긴 하다)으로 바꿨던지라 마침 키보드와 깔맞춤도 더 잘 되는 느낌이라 좋았다.

다양한 키보드들을 둘러보다 보면 금속재질의 플레이트를 흰색으로 도색할때 대부분 전착도장(electrophoresis = 전기영동 도장) 기법을 쓰는것 같아보였는데 (그래서 보통 그 도장공법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 “e”를 붙이는듯) 이 제품도 그 방식으로 제작됐다. 겉보기엔 금속같지 않은 매끈한 마감이라 깔끔하다.

물론 상판만 바꾼 것이기 때문에 측면에서 보거나 키보드를 뒤집으면 뒷판은 여전히 은색이라는게 신경쓰이긴 했지만… 어차피 대부분 정면에서만 보면 잊고 살수 있어서 크게 힘들지 않았다(?)

세라믹 키캡 (Cerakey)

Cerakey는 22년 5월에 Kickstarter에서 펀딩을 시작한 프로젝트다. 여타 키캡과 다르게 이제껏 시도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재질인 세라믹으로 만든 키캡이라는게 흥미로웠다. 보통 키캡은 그 두께가 두껍고 재질이 묵직할수록 더 깊은 (‘thock’) 키스트로크 소리가 나는데, 세라믹이라 얼마나 더 깊은 소리를 낼까, 또 현재 내 키보드 셋업과도 (다소 무거운 스위치 키압) 잘 어울릴것만 같았고, 흰색이라 심미적으로도 이쁠거같아서 반쯤 호기심에 후원을 눌렀다.

약 5개월 후인 10월에 드디어 배송이 되었다. 이 키캡은 또한 내 첫 무각인 (Blank) 키캡 세트다! 자판은 어차피 대부분 외워서 키보드를 보지 않고 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했지만, 그래도 실사용에 불편하지 않을까 다소 불안한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순백의 세라믹 위에 글자 프린팅을 남기지 않고 깨끗한 채로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받아보고 둘러본 바, 1세대 제품 치고는 솔직히 퀄리티가 썩 나쁘지 않았다. 플라스틱보다 세라믹은 깨짐에 취약하다보니 처음 펀딩할때부터 그 부분에 대해 제조사가 신뢰를 주기 위해 특수 열처리를 해서 바닥에 굴러도 잘 안 깨질거고 하는 등등 영상자료를 많이 올렸었는데, 그럼에도 불량이 몇개쯤은 있으리라 각오하긴 했는데 나의 경우 깨져서 온 것도 없고 특별히 불량인 녀석들도 없어서 교환해야만하는 귀찮음을 덜었다.

대낮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면… 더 삐까번쩍하다

처음 보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점. 코팅이 굉장히 글로시하다.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겠다 싶은 대목.글로시를 보고나니 매트(무광택) 처리 세라믹은 어떨까 싶은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Cerakey 향후 제품 로드맵에 있기는 하다 일단..)

사실 비주얼 다음으로 가장 기대했던 것이 감촉이었는데, 눈으로 보는것만큼이나 실제로 야들야들하다. 또, 세라믹 재질이라 언제나 손가락이 키에 닿을때 살짝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 상당히 기분좋다.

키보드 백라이트를 켰을 때 빛이 세라믹을 은은히 투과해서 꽤 이쁜 효과를 내는 점도 좋다.

키캡이 기존보다 너무 빛 투과를 잘 해서 위 사진처럼 키스위치의 스템 색깔이 투과될 정도다. (오렌지색) 진짜 완벽한 흰색을 추구하려면 왠지 스위치도 흰색계열로 바꿔야할것만같은 느낌이다…


내가 기대한 기준으로는 1세대 치고는 이미 충분히 좋은 제품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점 없는 완벽한 제품은 아직 아니다.

많은 유저들이 지적한 문제중 하나는, 키캡이 너무 헐겁거나 반대로 너무 꽉 끼는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키캡을 정교하게 몰딩해도 스템에 들어맞는 부분 (+모양 구멍)이 수많은 종류의 스위치 스템과 정확한 수치로 들어맞게 만들수는 없다. 플라스틱의 경우 적당히 수축/팽창할수 있다보니 끼워넣으면 스템에 알아서 맞춰지곤 하는데, 세라믹의 경우 플라스틱에 비해 그런 유연성이 부족하다보니 미세한 오차범위내 크기 차이에 따라 헐겁거나 너무 꽉 껴서 스위치 스템 플라스틱을 갈아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꽉 껴서 스위치 스템이 갈려나가는건… 어쩔 도리가 없는것 같고 🥲, 너무 헐거워서 키캡이 빠지는건 비교적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바로 테이프를 아주 작게 잘라서 스템 위에 붙이고 그 위에 키캡을 꽂는 것. 이러면 스템 틈 사이로 테이프가 들어가면서 스템을 조금 더 두껍게 만들기 때문에 보다 타이트하게 키캡이 꼽힌다. Cerakey 디스코드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한 사람들이 많았다. 부작용이라면, 위 사진의 왼쪽에 보이듯이 테이프가 갈려나가면서 다소 지저분해진다. 그래도 키캡을 뽑지 않는 한 볼 일은 없어서 실사용하는데 큰 불편은 없다.

그 외의, 다른 키는 멀쩡한데 스페이스바가 워낙 다른 키에 비해 크기가 커서 무겁다보니, 일반적인 스위치 스프링이 무게를 버티지 못해서 키를 한번 누르면 튕겨올라오지를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다만 이건 Cerakey측에서 개발 단계때부터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문제라, 해결책으로 스프링 무게가 더 무거운 스페이스바 전용 스위치를 동봉해 보내줬다.

내가 지금 GMMK Pro에다 쓰는 키스위치(Glorious Panda)도 키압이 낮은 편은 아닌데 (67g) 처음에 기존 스위치에 꼽아 테스트해보니… 역시 키캡이 무거워서 키가 잘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동봉해준 스위치로 바꿔꼽았다. 스페이스바만 리니어 스위치가 된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실사용에선 별 불편 없이 쓰고 있다.

흰색 노브로 교체

2022년 9월에는 흰색 (E-white) 로터리 노브를 장착했다. 이제 노브까지도 상판과 깔맞춤이다.

Flex Kit, 폴리카보네이트 보강판으로 교체

2023년 5월에는 FlexKit이라는걸 구입했다.

Flex kit은 무엇인가 하면…

이전 글에서도 짤막하게 적었지만, 원래 GMMK Pro의 디자인도 어느정도의 쿠션감을 고려해 가스켓(gasket)을 사용하는 구조로 제작되긴 했지만, 하판에 PCB가 결합되는 방식, 그리고 그 위에 상판이 결합되는 방식의 디자인적인 한계로 인해 보강판이 살짝 휘거나 (Flex=즉 ‘푹신’할 수 있는) 눌러져 내려갔다 올라올 공간의 여유가 그다지 없는 편이었다. 이걸 보완하려고 상판 나사를 아예 체결 안 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사용해보긴 했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진 못 했다.

그런데 이 ‘Flex’감을 찾는 유저들이 꽤 많았나보다. 나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진 않아서 몰랐는데, 어느날 Glorious에서 보낸 뉴스레터를 보고 FlexKit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내부 길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만 소량 제공되었던 것이, 이제는 누구든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

FlexKit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완전히 새로 디자인 된 하판, 두가지 두께(1mm, 2mm)의 보강판 흡음재, 하판 흡음재(3.5mm) 그리고 세가지 다른 재질로 제공되는 가스켓 스티커 팩. (20mm짜리 22개, 40mm짜리 22개)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은, 하판이 기존의 블랙, 실버 색상 외에 추가로 E-white 색상으로도 제공된다는 점이었다! 사실 키감은 기존 키감도 크게 불만은 없었기 때문에 굳이 키감만을 위해 킷을 샀다기보다는 흰색 하판이 출시되어 드디어 하판 상판 색 깔맞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것이 더 컸다…

어쨌든 이제 키보드가 참트루 올 화이트 키보드가 되었다.

하판 교체하려고 뜯은 김에, 그동안 계속 붙인 채로 써왔던 PCB 뒷면의 마스킹테이프 (Tape mod)를 떼고 조립했는데, 하판 흡음재 레이어가 얇아지니까 확실히 꽉찬 묵직한 음은 덜해지고 통울림이 다시 생기면서 오히려 뭔가 약간 더 경쾌해진거같기도 한게… 이건 이거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점에 녹음해본 타건 소리:

가죽데스크매트 + TX키보드매트
🆕신규하판 + 1mm 케이스폼 + 스위치플레이트 폼 + 1x 포론 (전부 Glorious 순정)
테이프모드, PE폼스위치패드, 글로리어스판다 (krytox205g0), C3이퀄즈 스태빌
Cerakey 세라믹키캡

폴리카보네이트 보강판으로 교체

2023년 5월, 비슷한 시기에 스위치 보강판을 폴리카보네이트로 바꿨다.

Polycarbonate.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이다. 기존에 쓰던 기본 보강판은 알루미늄 금속으로 되어있어서, 키감이 깊고 단단한 느낌을 주는데 일조했다면 폴리카보네이트는 그 반대 성향이다.

이걸 바꾸게 된 계기는 위의 FlexKit을 도입한 후 진짜 쿠셔니한 키감이 더 궁금해져서 그런 것이 크다. 아무튼 하판의 구조가 바뀌어서 보강판이 얹혀지는 방식이 약간 더 푹신해지긴 했는데, 여전히 스위치 보강판이 너무 단단해서 체감이 좀 덜 한 느낌이었다. 스위치 보강판이 금속이 아닌 좀 더 연질이면 키감이 더 부드러워질까? 하는 호기심에 질러봤다.

사실 처음 GMMK Pro를 살 때부터 있었던 교체 옵션이긴 하다. (또 다른 옵션은 황동 재질이다. 이건 또 완전 더 묵직한쪽…) 언젠가 폴리카보네이트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긴 했는데 거의 2년 후에 하게 될줄은 몰랐지.

이제까지의 각종 교체 작업은 그래도 비교적 쉬웠는데, 이번 작업은 결국 스위치를 보강판에서 다 뺐다가 다시 껴야하는지라 꽤 까다로웠다. 하나씩 다 빼긴 아무래도 너무 귀찮아서, 저렇게 뒤집은 채로 한 줄씩 눌러서 스위치를 빼주고 그 배치 그대로 폴리 보강판에 옮겨끼우는 편법을 썼다. 시간을 아주 약간 절약했다.

폴리 보강판에 모든 스위치 이식을 마치고 키캡까지 끼우고 불을 켜봤다. 이 부분도 나름 기대하고 있었던 부분중 하나인데, 바로 LED 빛이 보강판을 통해 은은하게 투과되는 것…

기존 보강판은 불투명하다보니 LED가 오직 스위치의 구멍을 통해서만 투과됐는데, 이제 보강판이 반투명이라서 LED빛이 더 투과가 잘 된다. 밝기도 살짝 더 밝아진 느낌.

폴리카보네이트 보강판으로 바꿔끼고 나니, 키감과 소리가 확연히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알루미늄 보강판 → Polycarbonate
PCB-보강판 사이 흡음재 제거

보강판이 금속에서 플라스틱이 되니 묵직한 저음역대가 사라지고 대신 좀 더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의 소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쓰고 있는 키보드 구성이 되었다.

지금 조합으로 GMMK Pro는 꽤 마음에 드는 조합이다. 이 다음에 여기에 또 뭔가 변화를 준다면 아마 키 스위치를 바꿔본다거나가 될것같은데… 언제가 될 지 어떤 것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