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돌아보며

2020/12/31 20:40

2020년.

어느 해라도 다 지나온 후에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지만, 올해는 특히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설명할 것도 없이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의 일상을 뒤집어 엎어 놓았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고, 멀쩡하던 것이 멀쩡하지 않게 되고, 생활의 모습도 사업도 사람의 생각도 바뀌는 해가 되었다.

나에게도 올해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나도 어쩌면 변화하고 싶지 않았던것 같다. 그냥 오랫동안 큰 변화없이 안정적으로 즐겁게 이대로도 살 수 있을줄 알았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다면 그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코로나는 왔고, 많은 작고 큰 계기들의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내 생각을 지금의 상태에 다다르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듯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과정에 발을 들인 것 같다.


1월: 짧고 굵게 끝난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라이브 이벤트

연초만 해도 코로나는 그저 외국의 뉴스였고 여태까지 그랬듯이 금세 지나갈 유행병일줄 알았다. 1월 한달은 연말연시 분위기에 이어 즐거운 일정들로 가득했었다.

2020.1.4 Crossing Delta

<크로싱 델타>라는 사상 초유의 유명 리듬게임 관련 아티스트 대거가 내한하는 이틀짜리 공연도 있었고…

2020.1.11 라이브러리

라이브러리라는 애니송클럽 이벤트도 있었다 (2019년 회고록에서도 한번 언급했었던것같다)

지금 돌아보면 마냥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게 올해 그리고 앞으로 조만간 즐길수 있는 마지막 이벤트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지

그런 흐름에서, 2019년 말에 어쩌다 디제잉에 입문하게 된 이후로 그 맛을 못 잊어서 한참을 컨트롤러를 어떻게 구해볼수 없을까 기웃거리다가 결국 중고로 DDJ-800을 구하게 된다. 다들 입문용으로는 400을 추천하는데 기왕 하는거 그래도 이정도 크기는 되어야 좀 제대로 하는 맛이 날거같아서 조금 욕심을 부렸던것 같다. 아쉽게도 시대가 이리 되어 버려 다시 공개적인 공연에서 디제잉을 다시 할수 있었던 기회는 없었지만, 집에서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었다. 후회는 없다.

2~4월: (부모님 없이) 집 수리 마무리하고 이사하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시기에, 회사와 집은 각각 이사를 앞두고 분주했다. 회사는 내가 직접적으로 이사 과정에 크게 관여한건 아니었지만 집 이사 건은 여느때보다도 골칫거리였다.

(구) 회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 앞 골목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한번도 오랫동안 한 집에서 2~3년 넘게 살아본 기억이 없는것이 항상 전세/월세 아닌 우리집이 없었거나, 아니면 좀 오래 살 것처럼 집을 구하면 모종의 이유로 인해 거처를 옮겨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년이라는 사이클이 이미 몸에 배였는지 이사 자체는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부모님 없이 처음으로 이사를 해야했다. 원래는 같이 살던 동생조차 없이 혼자서 이사를 해야될 뻔했는데…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심해지는 바람에 동생이 해외 장기 출장에서 조기 귀국을 하게 되면서 홀로 이사는 면하게 되었다.

옛날 집을 나오는 과정도 스펙타클했는데, 2년간 전세들어 살았던 빌라가 하필 갭투자 위험이 있는 매물이었던지라 (들어갈땐 몰랐지…) 정말로 주인 잘 못 만나 운이 안 좋으면 꽤나 골치아픈 수순으로 들어갈뻔도 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해 대비하느라 당시는 머리가 터지는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보증금은 무사히 돌려받았고 큰 손해 없이 일을 마무리지을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 이사갈 집은 너무 낡고 더러워서 결국 풀 수리를 진행했는데… 가족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역대급 저예산으로 진행했다. 공사가 모두 마무리되기 전에 잠시동안 귀국하셨던 부모님이 다시 출국을 하셨어야 해서 마무리 단계의 체크와 각종 자잘한 태스크를 내가 떠맡게 되었다. 저녁에 회사 마치고 체크하러 오고 어떤때는 낮에 확인하러 오고 당시 살던 집과 새로 이사갈 집을 왔다갔다 하느라 피곤한 날이 많았다.

각종 시행착오를 통해 아파트 수리 관련 일처리 수순의 노하우나 주의해야할것 골치아픈 것 잡지식이 늘은것만 같다.

다 수리해놓고 보니까 깔끔해보이지만 여기저기 가까이서 보면 싼티가 드러나는 구석들이 있다. 포인트컬러 디자인 이런거 없고 이번엔 그냥 벽지 천장 문틀 몰딩 죄다 흰색으로 해버렸는데 잘 한 선택인것 같다. 가장 저렴한 재료들로 했지만 하야니까 그럴싸해보이는듯

대출금/관리비/인터넷 등을 내가 더 많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이번에도 안방은 내 차지다.

이번에 이사오면서 드디어 수년간 티비 받침 대용으로 쓰던 세칸짜리 서랍장을 대체할 새 서랍장을 이케아에서 구했다. 티비를 더 이상 책상 반 서랍반 걸쳐서 안 놔도 되고 딱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피규어수집 거의 10년만에 드디어 장식장도 생겼다. 더 이상 먼지 앉힐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근데 피규어의 수는 줄었다. 앞으로도 늘지는 않을 것 같다.

4~6월: 갑자기 차에 관심이 늘었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 초기에 아직 국내 감염자수는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어디서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컸고 (이건 지금이 더 심하겠지만… 초기보다는 오히려 지금이 적응된 감이 있는것 같다) 한 때는 거의 한달 이상 지하철 버스를 한번도 안 탈 정도로 사람이 몰린 공간을 피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서울 도심 내에서 어딜 먹으러가거나 하는 빈도도 줄어들었고… 그렇지만 너무 또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해서, 대안으로 도심을 벗어나 좀 사람이 덜 몰릴만한 외곽의 카페를 찾아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평소에는 차를 (부모님이 국내에 안 계시니 가족 차를 내가 관리운행한다는 명목 하에 사실상 독점 이용중이다) 주말에 교회갈때나 타고 주중엔 안 썼는데, 대중교통을 피하면서 다른데 외출을 할려다보니 아무래도 차 이용 빈도가 팍 늘었다. 차를 자주 타다 보니 연식이 슬슬 늘어난 차에 이런저런 아쉬움이 생기기도 하고 인간적인 욕심에 신형 차들의 이런저런 테크 편의기능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차에 대한 관심이 이전에 비해 갑자기 늘었다. 

그냥 전반적으로 자가용에 대한 관심이 는 것도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좀 더 현실적으로 신차 또는 중고로 차를 구입하면 금전적으로 가능은 할까 계산을 해보기까지 하는 단계로 관심이 갔었다. 나이가 30에 접어들은 것도 있고 또래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차에 관심이 갈 때기도 하다보니, 관심사가 맞는 친구들과 다양한 차를 시승해보기도 하고 렌트해보기도 하고… 평소 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빈도도 늘고 한때는 진짜 유튜브 추천이 자동차로만 가득찰 정도로 많이 찾아봤던것 같다.

이게 다 올해 찍은 사진들인데 이렇게 보니 정말 많이 타봤다. 사진에 안나온 것도 많지만 직접 몰아본것도 있고 반은 그냥 친구따라 2열에서 타본것도 있고… 아무튼 다양하게 타보면서 차종별 회사별 느낌이 이런거구나 좀 견해가 생긴거같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어떤건지 좀 더 생각하게 되기도 했는데…

현실적으로 역시 아직 내 집도 없는데 차를 먼저 사는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차를 살만한 여유자금이 있는것도 아니고. 내 지금 상황에서 차가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해도 이미 추가 비용 없이 그냥 쓸 수 있는 가족 차가 있다보니 기존 차를 바꾸는건 아무리 정당화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냥 생각을 덜 하게 되고, 의도적으로 유튜브를 덜 찾아보게 되고… 하다보니 차 사고싶다는 생각이 쑥 들어갔다. 모 전시장에 예약해뒀던 BMW 시승회도 한 두번 미뤄지니 의욕이 사라져서 취소해버리고. 물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새 차 안 타고싶냐 하면 그야 당연히 타고싶지만, 그래도 올해 상반기만큼의 열의는 없다.

7월 @ 영종도 엠클리프

7월: 입사 6년만에 한달짜리 휴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처음 들어간게 2014년 하반기니까 올해가 6년차, 벌써 7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휴가 제도가 자유로운 회사였던 덕에 그동안 짧고 길게 휴가를 안 썼던건 아니지만 (대체로 대부분 일본을 놀러갔었다) 정말 제대로 길게 쉬면서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들을 하거나… 아니면 진짜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째저째 7월에 적절해보이는 시기가 와서, 먼저 예고를 하고 휴가를 내질러버렸다. 4주라는 시간은 정말 빨리도 지나갔는데…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늦잠자고, 주말은 교회일로 바쁘고, 하다보니 특별히 뭘 했는지도 별로 기억도 안 나지만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부천 어택

리듬게임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애초에도 리겜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어있기도 했는데 (작년에도 일본 갈때 온게키 한거 외에는 국내서는 정말 거의 안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오락실 쉽게 가기가 꺼려지다보니 더 안 가게 되었던거 같다. 위 사진도 휴가중에 오랜만에 좀 놀아볼까 해서 친구들이랑 날잡아서 난생 처음 가봤던 부천의 리겜 성지 오락실… 이후에는 리겜을 한 기억이 없을정도로 오락실을 못/안 갔다.

7월: 20년 이상 써온 안경을 벗다

휴가동안 있었던 가장 큰 일이라고 하면 시력교정 수술 (스마일라식)을 받은 일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입학할 당시부터 나는 이미 안경을 쓰고 있었고, 부모님 말로는 유치원 시절부터도 안경을 썼다고 하니 최소 20~25년간 안경을 쓰고 살아온 게 된다.

라식/라섹 수술이라는게 예전부터 있었고 주변에서도 가족중에서도 수술을 잘 받아 안경을 벗은 사례가 많았지만, 나는 주변에 비해 항상 시력이 매우 나쁜 축에 속했고 (안경 두께로만 봐도) 직업특성상 수술 회복기간을 길게 잡을수가 없다보니 수술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다)

그러다가… 긴 휴가를 쓰게 된 것도 있고, 여러가지 심리적인 변화로 인해 나를 좀 더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일환으로 안경을 벗기로 결심을 했다. 굴절율 높은 두꺼운 안경으로 인해 눈이 작아보이게 되고 내 인상에 안경이 큰 영향을 준다는건 익히 알아왔고 나름의 컴플렉스기도 했지만… 사실 어쩌다 잠깐 내 안경 벗은 얼굴을 보고 제발좀 안경 벗어요 형/오빠 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좀 용기를 얻게 된게 크다.

좀 본격적으로 정보를 찾아보다보니, 가장 최신 기술인 3세대 시력교정술인 “스마일”은 놀랍게도 당일 수술하고 당일 회복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돈이 좀 많이 들어도 이쪽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잘 됐다. 수술 자체는 한쪽 눈 당 1분도 안 걸린 느낌이었고 한 15분을 눈 감고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쉬고 집에 보내줬는데, 지하철 타고 귀가하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흐르는 바람에(이건 예상했다) 콧물이 너무 많이 나서(이건 전혀 예상 못했다) 마스크가 흥건하게 젖는 바람에 집 도착하기까지 서서 참느라 고생한게 사실상 수술보다 더 힘들었다. 당일에 한 4시간 일부러 캄캄한 방 안에서 자고, 인공눈물 안약 잘 넣고 한 1-2주 너무 눈 무리 안하게 조심한거 빼고는 (사실 그러면서 할거 다하긴 했다) 정말 회복이 빨랐던것 같다.

그렇게나 오래 써왔던 안경을 벗고 나니 진짜 어떻게 그동안 그렇게 불편한걸 당연히 여기고 살아왔나 싶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안경 안 더듬고 바로 시계 시간이 보이는 거라든가, 샤워하는데 샴푸통에 글씨가 보인다는 거라든가, 소소한 일상의 감탄이 생겨났다. 건강한 눈을 가졌다는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새삼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얼떨결에 올해 최고액의 지름이 되어버렸다 (할부). 노안이 오면 그땐 그거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10년간은 30대를 안경 없이 살수 있으니까. 시력 관리 잘 해서 오래 버텼으면 좋겠네.



나를 다시 알다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난 수 년간은 해외여행과 각종 이벤트와 취미생활이 사실상 내 일상 속의 큼지막한 활력소와도 같은 역할로 큰 비중을 차지해 왔었는데, 그런 것들이 올해는 전부 사라져버렸다. 사실 작년 말만 해도 “해외 원정 이벤트”라는 취미는 오래 지속하기엔 너무 코스트가 크기도 했고, 미래 지속적이지 못하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기 때문에 언젠간 끝내야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좀처럼 내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환경적인 내 통제 밖의 요소로 강제로 끊게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었다.

비어진 시간에 그럼 나는 그동안 못 했던 다른 취미생활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나 혼자서도 잘 놀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해왔었다.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고, 항상 시간에 쫓겨서 다 하지 못 할 뿐. 하지만 올해가 되어서는, 타인에 의존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굉장히 혼자서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면을 직시하게 되었다. 코로나 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사람을 만나기가 여느때보다 더 어려워졌고 나는 잘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생각에 짓눌려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정말 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해라고 느낀다. 언제나 뭐든지 혼자서 잘 해내 보이려던 자존심을 꺾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캐주얼하게 만나지 못한 대신에 소규모지만 더 확실한 모임들이 이루어졌고, 소중한 관계들을 더 탄탄히 하는 계기들이 되었다.

9월 27일, 합정 근처 어딘가

결혼에 대한 생각

이런 생각의 흐름에서 이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에 대해서도 여느때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해가 되었다. 요즘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당연히 해야지” -> “하고싶다” -> “하면 좋겠다” -> “못 한대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로 서서히 변화해오던 와중에, 결혼과 가족 생활이 주는 행복을 내가 다른 인생의 재미로 대체할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이 올해의 경험으로 인해 많이 깨지게 되었다. 결국 취미는 취미일 뿐이고 10년 20년 후에도 변치않는 즐거움을 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끊임없이 다양한 취미의 추구로 내 인생을 견인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족에서 얻는 행복이 정말 나 개인의 어떤 것을 희생하는것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할 만큼 별 것 없는 행복일까? 무슨 일이든 인생에 때가 있듯이, 결혼에 대해 지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고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10년 후에 생각이 바뀌어도 그 때는 지금과는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30대에 접어드는 길목에서 지난 10년간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되었다. 한국에 나온 뒤, 블로그를 열고, 트위터를 시작하고, 인터넷상에서의 각종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온갖 취미의 영역에 발을 들여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해봤다. 그것들이 다 쓸데 없는 일이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20대를 나는 너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서 나를 가꾸는데만 힘을 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 물론 하고는 싶었지. 하지만 나의 시간과 노력 대부분을 들여서까지 얻고싶진 않았다. 그 외에 다른 “내가 해야하는 일들”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이성과 대화할때의 소통방법, 상대를 이해하는 법,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법, 상대에게 보여지는 “나”의 장점과 단점을 아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인상과 용모를 가꾸는 것… 이런 것들은 항상 우선순위가 낮았다. 크리에이터로서 쓸모있는 나를 가꾸는데만 집중했었지, 이성異性으로서 사람으로서 매력을 가꾸는 데에 너무 노력을 안 했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해서 올해 내 연애전선에 관련해 바뀐게 있냐…하면 없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한 것 부터는 첫 걸음을 내딛은 것 같다. 예전에 비해서는 자진해 사람 소개도 받아보고, 만나서 이야기도 해 보면서 오히려 나에 대해서, 상대에 대해 더 알게 된 부분도 있고. 여전히 연애는 잘 모르겠지만. 🤣 그래도 최소한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의 꿈을 버리지 않고 다시 붙들게 된 것만으로도 올해는 진전이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것, 중심을 되찾기

블로그에는 신앙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은 없는것 같지만…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한번도 신앙을 내려놓은 적은 없었다. 교회 출석을 빠진 적도 없고 내 믿음이 흔들려본 적도 없다. 수 년간 교회 환경도 바뀌어 오면서 작고 큰 일을 맡아 섬기기도 해왔지만, 그간 내 삶의 모습이 정말 그 신앙을 따라 사는 삶이었는가 하면 아니었던것 같다.

2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일종의 ‘자유’를 누렸다. 부모님이 교회 가란 소리 안해서 교회를 빠지고 그랬던것도 아니지만, 목사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해야만 하는 무언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의식해서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하는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나는 썩 나쁘지 않게 크게 일탈하지 않는 삶을 산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피고 여자도 안 후리고(??) 교회 잘 나가고 예의바르고 착해보이게 살았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분야들, 어찌됐든 그것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니 잘 활용해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실력을 갈고닦아 성공하고 인정받고 유명해져서 나에게 이 재능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영광되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뒷면에는 그 영광을 내가 취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기에… 언젠가부터는 내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두 영역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직접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최대한 내가 드러나지 않게. 그치만 다른 부분은… 나도 유명해지고 싶으니까 나를 드러내는데 서슴지 않았다.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디자인도 하고, 개발도 하고, 이것저것 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것은, 어떤 분야든 어중간하게 잘 하는 수준이 아닌 진짜 잘하는 수준으로 가려면 취미의 영역을 넘어버리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냥저냥 괜찮게 하고 과정을 즐기는 것이 취미의 수준일텐데, 전공자도 아니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내가 마음만으로는 프로의 영역과 경쟁을 하고 있으니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부어야하는데, 이쯤 되면 그런 노력의 투자를 정당화할만한 목표의식이 요구되는데… 여기서 내 내면의 끝없는 부딪힘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이런 충돌로 인해 특정 분야의 창작을 잠시 멈추거나 그만 둔 적이 사실 작게 크게 많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도 한동안 길게 쉬었다가 최근 몇 년 새 다시 잡았고, 올해 상반기에는 특히 여느때보다 더 열심히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이전과 똑같은 문제에 다시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내게 물어야 하는 핵심 질문은 이거였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발전해서 얻으려 하는게 대체 무엇일까?”

유명해져서 칭찬받아서 기분 안 좋을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창작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이것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사람의 영광은 한 순간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단기적 목표가 아닌 장기적인 내 인생의 목표로써 나는 내 신앙에 따라 그 분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었고 하나님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려는 것이 어쩌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하나님을 끼얹어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여전히 중심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인정하고, 내 중심을 되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25일 @ 서울 스카이 전망대

올해의 내 개인적인 인생의 관점에서 전반적인 흐름을 돌아볼 때, 코로나로 인해 환경이 바뀌고 제한이 생기며 어떤 사람들과는 멀어지고 어떤 사람들과는 더 가까워지고 한 변화가 온 것이 앞서말한 심경의 변화에 이르게 하는 어떤 과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밥먹듯이 놀러가던 것을 갑자기 못 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주말의 불확실성이 없어지면서 이전에 비해 교회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을 끼고 일본에 가면 주일에 항상 교회는 갔었지만, 아무튼 한국의 홈 교회는 빠지게 되니 무언가 더 깊이 사역에 관여하거나 그냥 내가 마음을 이제까지 활짝 열지를 않고 있었던것 같다. 책임이 생기면 자유롭게 이벤트 일정에 맞춰 출국을 못하게 되니까. 여기서도 내 우선순위가 어디에 가있는지 드러나는 대목.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예배가 메인이 되면서, 원래 교회에서 부가적인 것으로 셋업해 진행하던 온라인 방송이 사실상 필수불가결인 부분이 되어버려, 내가 맡고 있던 방송 부분이 뭔가 무게가 더 실리기도 하고, 책임감을 더 가질수밖에 없어졌다. 원래 잘 참석하지 않던 금요예배도 처음엔 방송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면서… 카메라 보랴 자막 보랴 방송 확인하랴 반쯤 집중 못할때가 많지만 그래도 계속해 듣는 말씀 가운데 분명 내 안에 조금씩 벽을 허물던 것도 있었으리라.

이전 어느 해보다도 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서 못하던 대화도 하면서, 깊은 이야기도 하고,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와 관련 된 책도 읽으면서 또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내 중심에 대해 다시 점검하게 만드는 도전도 받게 되고. 다 무언가 큰 흐름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11월 23일, 영종도

2021년은…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백신 도입이 코앞에 있지만 이제는 또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이랴,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된 이후에도 또 어떤 어려움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는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일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도 하지만, 올 한해 나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 또 그로 인해 변한 점들, 결심한 것들… 물론 나는 일개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 또 넘어지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고민하고 새로운 어려움 앞에 좌절하고 하겠지만 뒤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한 때는 결국 모든 게 다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내가 뭘 해도 이건 하나님을 위한 일은 되지 못하겠구나-하고 반쯤 좌절한 상태에 잠깐 빠진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올 스톱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아직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올바르게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일까.

하나씩 하나씩 변화해야할 부분을 변화하고, 버려야할 습관들은 버리고, 고쳐야할 생각들은 고치고. 그렇게 나아가 보려고 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결국 그 분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창조주시다. 뭐든지 내 마음에 먼저 소망을 불어넣어 주시고 그로 인해 일하게 하시지 억지로 강요하는 분이 아니시다. 내 마음속에 어떤 선한 소망이 있고, 중심이 정말 하나님을 위함이 확실하다면 무엇을 해도 기쁘게 받아주시리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이 정말 제대로 잡혀있을때의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정말 끊임없이 옛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치는 나를 고쳐잡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


감사합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오늘날까지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데 함께 지탱해주고 같이 걸어갈 수 있도록 내게 허락된 수많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또 그들의 마음과 섬김으로 인해 감사합니다.